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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게임 만평] WHO 게임 과몰입 질병 인정,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작성자 :	등록일 : 2019-05-28 오전 9:06:30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이하 WHO)가 ‘게임 과몰입(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공식 인정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5월 20일~28일까지 개최 중인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 WHA)에서 5월 25일(현지시각)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분류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이하 ICD-11)’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지난 2015년 WHO는 인터넷을 통해 ‘ICD-11’ 초안(http://icd.who.int/)을 공개한 바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6번째 항목인 ‘정신적, 행동적 또는 신경 장애(Mental, behavioural or neurodevelopmental disorders)’에서 ‘물질 사용 또는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Disorders due to substance use or addictive behaviours)’ 하위 항목인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Disorders due to addictive behaviours)’에 ‘게임 과몰입’이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로 분류됐다.

질병 코드 6C51로 분류된 ‘게임 장애’는 6C51.0 온라인 항목과 6C51.1 오프라인 항목, 6C51.Z 불특정(unspecified) 항목으로 세분됐지만, 항목별로 정의한 내용은 비슷하다. 정의에 따르면 ‘게임 장애’는 온라인/오프라인에서 게임을 지속적,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면서 발생한다.

게임이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 등 삶과 관련한 다른 활동보다 우선순위가 높아진 경우와 게임 때문에 부정적인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계속해서 플레이하는 경우, 플레이 시간, 횟수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경우가 12개월 이상 지속할 경우 ‘게임 과몰입’, ‘게임 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만약 증상이 심각하면 이보다 적은 기간일지라도 ‘게임 과몰입’으로 판정된다.

‘ICD’는 WHO가 사람에게 발생하는 질병 및 사망 원인을 다룬 국제 표준 분류 규정으로, 현재는 1983년부터 1992년까지 개발돼 사용 중인 ‘ICD-10’이 최신판이다. 이번에 승인된 ‘ICD-11’은 2022년 1월 1일부터 발효되고 과도기 최소 5년을 거쳐 2027년부터는 WHO 194개 회원국에서 적용할 예정이다. 이때부터 ‘게임 과몰입’은 정식으로 ‘게임 장애’ 질병 코드로 분류되고, 병원에서도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우리나라는 통계청이 주도해 ‘ICD’를 기반으로 5년에 한 번 ‘KCD(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만든다. 현재는 2015년 발표된 ‘KCD-7’을 사용 중이다. 그런데 ‘KCD’는 개정 준비에만 2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2020년 발표될 ‘KCD-8’에는 ‘게임 장애’가 등재 가능성이 작고 2025년 나올 ‘KCD-9’에서는 등재될 수 있다.

또한, ‘KCD’는 ‘ICD’에서 질병으로 분류된 항목이 등재되지 않은 적이 없었고 2018년 10월 국정감사 당시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WHO에서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인정하면 받아들이겠다”고 언급했으므로, 2025년 개정될 ‘KCD-9’에는 ‘게임 장애’가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전 세계 학계는 물론 게임 업계에서는 명확한 진단 기준이 없는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보통 미국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발행한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for Mental Disorders Fifth Edition, DSM-5)’을 ‘게임 과몰입’을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하지만, 여기서도 ‘근거가 필요한 항목’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DSM-5’에서는 게임에 대한 몰두(이전 혹은 다음 게임에 대해 생각), 게임이 제재될 경우 나타나는 금단 증상, 게임을 더 오래 하려는 욕구, 게임 참여를 통제하려는 시도 실패, 게임을 제외한 다른 취미와 오락 활동에 대한 흥미 감소, 사회적/정신적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과도하게 게임 지속, 부정적인 기분에서 벗어나려 게임 플레이, 인터넷 게임을 한 시간을 속이는 행위, 게임 때문에 직업, 학업, 대인 관계, 진로 기회 등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까지 총 9가지 경우 중 5가지에 해당하는 경우를 ‘게임 과몰입’으로 판정한다.

그러나 ‘DSM-5’에 나온 ‘게임 과몰입’ 기준 9가지는 게임을 책, 만화, 영화, 드라마 등 문화 콘텐츠나 야구, 축구, 농구 같은 스포츠, 음악 감상, 낚시, 등산 등 보편적인 취미 생활로 변환해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가 있다. 이는 곧 ‘게임 과몰입’에 대한 정의, 원인, 증상에 대한 사회적, 의학적 기준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규정하기 위한 연구를 대부분 정신의학계에서 진행한 점도 문제로 지적받았다. 학계에서도 일부 학자가 인정했듯 연구 내용이 부족한데도 ‘게임 과몰입’을 정신 질환으로 규정하면 이를 치료 혹은 교정하기 위해 정신의학과가 나서는 상황이 발생하고, 여기에는 이익이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8년 5월 관련 안건을 처리할 계획을 세웠던 WHO는 유예 기간을 1년으로 정했다. 이 기간 학계와 게임 업계는 꾸준히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WHO는 ‘ICD-11’을 만장일치로 승인했고, WHA가 끝나는 5월 28일 전체 회의 보고만 거치면 개정 논의가 완료된다.

이와 관련해 북미 게임 업계를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ESA)는 5월 26일 성명을 발표하고 “WHO는 ‘게임 장애’ 질병 코드 분류에 충분한 근거를 검토하지 않았다”며 “’ICD-11’에 ‘게임 장애’를 포함한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주장했다. 성명에는 우리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뉴질랜드, 브라질, 캐나다, 호주 게임 협회가 참여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WHO는 ‘게임 과몰입’이 포함된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ICD-11’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게임 업계에서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며 “특히 게임 외에 다른 활동을 넣어도 적용되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진단 기준을 통해 정신 의학계가 이득을 취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림 텐더 / 글 겜툰 박해수 기자(caostra@gamt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