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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디지몬 서바이브와 선택받지 않은 아이들
작성자 : 등록일 : 2022-08-05 오후 3:54:19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는 하이디(HYDE)가 개발한 턴제 전략 어드벤처 '디지몬 서바이브'를 7월 29일 국내 정식 출시했다. '디지몬' IP를 활용해 PC 및 게이밍 콘솔로 발매된 작품이다.

턴제 전략 전투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전투 비중이 그리 높지 않을뿐더러 스토리가 굉장히 중요한 작품인 만큼 사실상 텍스트 어드벤처라고 생각해도 좋다.



'디지몬 서바이브'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이미 다 커버린 어른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디지몬' 작품들처럼 어른들이 보기에 유치하지도 않고 마냥 어둡지만도 않다. 정확히는, 어둡기는 한데 끝까지 어둡기만 하진 않다.

주인공들은 이전 작품들과 달리 디지털 세계를 구하기 위해 선택받은 아이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이하 사이버 슬루스)'처럼 뭔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지도 않다.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기에 휘말린 평범한 아이들이고, 그런 면에서 공감하기 쉽다.

'디지몬' IP를 상징하는 요소 중 하나인 디지바이스가 없다는 점도 우연히 휘말렸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원래부터 파트너 정신상태에 영향을 크게 받는 디지몬이지만, 디지몬 성장 방향성을 이끌어주는 디지바이스가 없는 이번 작품은 특히 더 동반자라기보단 파트너 마음이나 정신상태를 형상화한 듯 한 모습을 보인다.



일부 요소나 장면은 '디지몬 어드벤처'나 '파워 디지몬' 등 과거 작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당장 주인공 모모츠카 타쿠마는 디자인부터 '디지몬 어드벤처' 주인공인 야가미 타이치(신태일)를 연상시키고, 파트너도 아구몬으로 동일하다.

과거 작품과 정반대이기에 오히려 더 과거 작품이 떠오르는 부분도 있다. 예컨대 스토리 끝까지 용기를 품고 나아갔던 타이치와 달리 타쿠마는 흔들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배드엔딩 역시 나이와 경험에 비해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진 걸 견디지 못하며 발생한다.

등장인물들 성격 역시 '어른들이 보는 어린아이들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 모양새다. 자칭 리더인 카야마 슈지는 듬직한 맏형이 아닌 자격 없이 나이만으로 리더 행세를 하는 식이고, 친절하고 자상한 모습을 보이는 시부야 야오이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면을 지닌 식이다.

스토리에서도 각자가 가진 부정적인 면모에서 촉발되는 각종 사건이 주가 된다. 파트너 디지몬을 부정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묘사도 등장한다.



스토리와 별개로 공포 게임을 방불케 하는 연출이 자주 쓰인다. 일본에서 '피안화'라고 불리며 불길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꽃인 석산이 배경에 자주 등장해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하고, 약한 몬스터로 주로 나오던 울퉁몬이 완력으로 아이들을 압도하는 모습도 꽤 무섭게 연출됐다.

1장 내내 아라크네몬을 상대로 어두운 학교를 돌아다니는 장면은 내내 마음을 졸이게 하고, 점프 스퀘어 연출도 적재적소에 잘 활용돼 아예 처음부터 공포게임으로 개발됐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전투 시스템이 특출나지는 않다. 평범한 SRPG 방식이고, 그마저도 등장 캐릭터가 디지몬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고전 SRPG와 비교해 큰 차별점은 없다.

유저가 게임의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릴만한 부분이다. 스토리와 연출을 중시하는 유저라면 '디지몬 서바이브'의 고전적인 전투 연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전투와 육성 콘텐츠를 즐기는 유저라면 대단히 실망할만한 콘텐츠기도 하다. 전투 난도가 높지도 않고, 스펙업 작업이 가능한 프리배틀은 사실 도감 100%를 노리지 않는다면 아예 무시해도 큰 문제가 없다.



적으로 나온 디지몬 중 대화가 통하는 상대가 있다면 대화를 통해 동료로 만들거나 아이템을 얻어낼 수 있다. RPG 경력이 긴 유저라면 대화 시스템을 보고 '여신전생' 시리즈에 나오는 악마회화 시스템을 떠올릴 텐데, 꽤 비슷하다.

독특하긴 해도 대화 시스템이 썩 잘 설계된 편은 아니다. 디지몬 종류에 따라 선호하는 대사가 고정되어 있긴 한데, 외형만 보고 알기가 어렵다. 일단은 디지몬을 분류하는 3대 속성인 백신·데이터·바이러스에 따라 선호 대화가 결정되는 편이지만, 도대체 왜 이 대화문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디지몬을 보자마자 그 디지몬이 백신·데이터·바이러스 중 어떤 속성인지 알 수 있는 팬이라면 대화 진행이 상당히 편해진다. 팬심이 소소하게 보답받는 장면인 셈이다.




게임 플레이 방식은 꽤 낡은 편이다. PSP나 PSVita 시절에 출시된 텍스트 어드벤처를 연상시킨다. 그래도 세월이 흐르며 기기 성능이 오른 만큼 화면 전환 등 각종 연출은 당시 출시된 게임보다 더 섬세하고 부드럽게 이뤄진다.

그런 면에서 거치 기종보다는 스위치에서 플레이하는 게 더 어울린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또한 게임 내내 커서를 옮겨 대화나 조사 상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활용되는데, 휴대 모드 스위치는 이 조작을 터치스크린으로 할 수 있어 훨씬 간편하다.

고전적인 느낌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마음에 들만한 요소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런 게 최신 게임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장르인 만큼 체험판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다회차 플레이가 필수적인 게임 이기도 하다. 상술한 등장인물들의 부정적 면모가 2회차 플레이에서 바뀌는 경우도 있고, 이전과 다른 엔딩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핵심적인 건 주인공 성향 시스템이다. 선택지에 따라 도의(백신), 조화(데이터), 격정(바이러스) 셋 중 한 성향이 상승하며, 가장 높은 성향에 따라 스토리와 아구몬 진화 루트가 바뀐다. 모든 엔딩을 확인하고 진화 루트를 해금하기 위해선 반드시 다회차 플레이를 진행해야 한다.

동시에 다회차 플레이 자체는 조금 불편하다. 핵심 스토리가 변화하는 2회차라면 몰라도 세부 엔딩을 위해 다시 시작하는 유저라면 대화문 정도는 얼추 외우고 있기 마련인데, 빨리 감기나 '다음 선택지까지 스킵' 기능이 없다.



등장하는 디지몬 수가 꽤 적은 편이다. DLC 몬스터인 길몬을 포함해 117마리인데, 이 부분이 플레이 중에 크게 체감되지는 않는다. 자유롭게 전투할 기회가 적고, 정상적으로 플레이했다면 프리배틀을 거의 플레이하지 않고 엔딩까지 일직선으로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도감을 완전히 채우고자 하거나 육성게임이라는 '디지몬' 시리즈 본질을 추구하는 유저에게는 디지몬 수 부족이 정말로 뼈저리게 느껴질 수 있다.

디지몬 팬들에게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부족한 디지몬 풀 내에서 진화 루트를 구현하다 보니 이전 작품에서 보인 적 없는 진화 루트를 선보이는 경우가 발생한다. 무궁무진한 진화 가능성을 가진 게 디지몬이라지만, 있어야 할 진화체가 없거나 전혀 무관해 보이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장면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디지몬 서바이브'는 시대착오적이다. 게임 진행 방식은 낡았고, 전투는 긴박감이 없다. 연출은 인상적이긴 해도 두 세대 이전 콘솔에서나 쓸법한 방식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하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스토리는 진지하면서도 유치하지 않다. '디지몬' IP를 잘 모르는 유저라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스토리 전개 방식을 택했고, 그러면서도 이전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 역시 충실하다.

'디지몬' IP를 제외하고 독자적인 IP를 활용해도 충분히 성립되는 스토리지만, 그만큼 '디지몬' IP를 활용했기에 더 강조되는 작품 주제도 있다. 특히 성장 드라마라는 편에서 '어두운 디지몬 어드벤처'라는 정체성을 충분히 살렸다.

개발 과정이 순탄치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디지몬 서바이브'는 개발 과정에서 개발팀이 바뀐 적 있고, 개발팀 규모도 인디게임에 비견될 정도로 작았다. 그런 팀이 이 정도 작품을 만들었다면, 처음부터 제대로 방향을 잡고 개발했을 때 결과물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개발진은 유저들이 원한다면 세계관을 계승한 차기작을 개발할 수 있다고 약속한 바 있다. 어둡고 묵직한 동시에 '디지몬' IP 핵심 가치인 자유 의지와 미래를 향한 의지를 잘 살려낸 작품인 만큼, 과연 어떤 후속작이 탄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겜툰 박현규 기자 news@gamt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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