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라게임즈는 테일월즈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RPG '마운트 앤 블레이드 2: 배너로드(이하 배너로드)'를 10월 25일 국내 정식 출시했다. 앞서 해보기 출시일인 20년 3월로부터 약 2년 7개월, 첫 공개인 12년 9월로부터 약 10년 2개월가량 만에 이뤄진 정식 출시다.
전작 '마운트 앤 블레이드' 및 확장판인 '마운트 앤 블레이드: 워밴드(이하 워밴드)' 정식 후속작으로, 플랫폼은 윈도 PC 및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다.
'배너로드'에서, 유저는 장비를 갖추고 병사를 모아 전쟁을 벌여 대륙을 제패해야 한다. 모든 활동에 돈이 드는 만큼 캐러밴이나 작업장을 통해 돈을 벌 수단도 마련해야 하고, 그 외에 원활한 장비 수급을 위한 대장장이 작업 등도 병행해야 한다.
게임 시작 시점에서 주인공 캐릭터의 과거를 직접 설정할 수 있다. 제국, 블란디아, 바타니아, 스투르지아, 쿠자이트, 아세라이 등 여섯 메이저 팩션이 마련돼 있으며, 시작한 팩션에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팩션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으나, 몇 차례 플레이 해본 결과 후반까지 유의미한 스타팅은 바타니아였다. 숲 지형 속도 페널티 -50%가 있기 때문인데, 생산성 향상이나 급여 감소, 영향력 등은 조금 고생하면 따라잡을 수 있으나 숲 지형 속도 페널티는 어떤 수단을 써도 바타니아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후반 플레이 이야기이며, 초반에는 충분히 유의미한 차이를 일으키는 만큼 취향껏 플레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사실, 캐릭터 컨셉 하나 정해서 플레이하기 좋은 게임에서 컨셉 세우기에 팩션 설정만 한 게 없기도 하다.
배경은 다를지언정 모든 주인공 캐릭터가 시작하는 순간은 같다. 도적에게 습격당해 부모를 잃은 상황에서 형제 한 명과 함께 납치당한 다른 형제들을 구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도적을 상대하기 위해 병력을 모집하고, 산적 소굴을 습격해 소탕하는 과정 속에 게임 튜토리얼을 녹여냈다.
다만 콘솔 버전에서는 튜토리얼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마을에 진입해도 촌장을 찾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인데, PC 버전에서는 임무 목표를 알려주는 버튼을 패치로 추가했으나 콘솔 버전에는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어쩌면 추가되었는데 게임 내에서 어떤 버튼인지 알려주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입문장벽이 높은 게임인 만큼 튜토리얼을 스킵한 뒤 온라인 설명 영상을 통해 별도로 튜토리얼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뒤로도 조작감을 익히기 힘들어 전투 등에서 크게 고생하게 되었다. PC 버전에서는 이미 해결된 문제인 만큼 콘솔 버전에서도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되기를 바란다.
튜토리얼이 끝난 뒤에는 '네레체스의 우행'이라는 메인 퀘스트 비슷한 것이 시작되지만, 끝까지 진행하지 않아도 실질적인 게임 최종 목표인 세계 통일에는 큰 지장이 없다. 사실 서사가 그리 뛰어난 퀘스트도 아니다. 중요한 건 임무 중간에 구출하게 되는 동생들이다.
일단 도적에게 복수한 뒤에는 주인공과 형제, 튜토리얼 및 '네레체스의 우행' 과정에서 구출하는 동생들이 클랜을 이루게 된다. 유저는 하나의 클랜만 거느릴 수 있으며(외부 클랜을 영입하면 흡수된다), 클랜은 실질적으로 유저를 끝까지 지지하는 온전한 개인 세력으로 활용된다.
클랜이 지니는 다른 의의는 예비 목숨이라는 점이다.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에게는 수명 개념이 있으며, 주인공도 마찬가지인 만큼 나이가 들거나 전투에서 패배했다가 포로로 잡힌 뒤 처형당할 수 있다. 이렇게 사망한 경우 클랜 일원 중 한 명을 골라 플레이를 이어 나갈 수 있다.
스킬 시스템은 전작에서 선보인 단순한 1레벨 = 1스킬 포인트 개념에서 능력치-기술-특성 개념으로 개편되었다. 활력, 제어력, 인내심, 교활함, 사회성, 지능이라는 6개 능력치가 있으며, 능력치마다 관계된 기술 3개가 있다.
4레벨마다 능력치 점수 1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며, 능력치 레벨이 높을수록 하위 기술 경험치 획득 배율이 올라간다. 또한 1레벨마다 1씩 획득하는 집중 점수를 기술에 부여해 단일 기술의 경험치 배율을 높이고 숙련도 한계를 늘릴 수 있는 식이다. 숙련도가 25씩 오를 때마다 여러 특성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예컨대 활력 능력치가 높을수록 하위 기술인 '한 손'의 숙련도가 더 빠르게 오른다. '한 손' 숙련도가 25에 다다르면 각각 다른 효과를 지닌 특성 '강타자'와 '막기'가 해금되는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습득할 수 있다.
새로운 스킬 시스템은 행동이 곧 성장에 직결되는 만큼 게임 몰입감을 한층 더 올려주는 기능을 했다. 조금 많이 번거로운 데다가 익숙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런 걸 무서워하는 유저라면 애초에 이 게임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스킬 숙련도 시스템과 수명 시스템이 함께 존재하다보니 반복작업을 통해 스킬 경험치를 한없이 올리고 게임을 즐기는 방식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전투 없이 반복 작업으로 올릴 수 있는 스킬을 모두 올리다보면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든 캐릭터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수명 옵션을 끄고 진행하더라도 스킬 성장에만 몰입하다 보면 가능하지만, 게임 시작 후 약 2달(약 60일)쯤 지나면 멀쩡했던 영주가 모든 것을 잃고 도적떼에 쫒겨다니거나, 식량이 하나도 없어서 죽어가는 도시나 지나치게 강해서 난공불락이 되어버린 도시 같은게 등장하는 '배너로드' 특성상 권장할만한 작업은 아니었다.
게임 핵심 돈벌이 수단은 공방과 캐러밴이다. 캐러밴은 동료 한 명을 상단 리더로 삼아 호위병들과 함께 여러 도시를 돌며 교역을 통해 이익을 얻는 일종의 자동 돈벌이 수단이고, 공방은 클랜 소유 공방에서 주변 마을에서 원재료를 구매하고 가공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두 방식 모두 일장일단이 있었다. 캐러밴은 전쟁으로 교역이 불안정해지면 월급만 나가는 골칫거리가 되며, 공방은 일단 영토가 적에게 넘어가면 공방 전체를 몰수당하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다.
확실한 건 공방은 장비 수급을 위해서라도 필수적이지만, 캐러밴은 필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공방 중에도 특히 대장간은 각종 장비를 수급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데, 이를 통해 재화를 수급할 수 있는 만큼 굳이 캐러밴까지 운용할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소규모 전투는 언제든지 투기장을 통해 즐길 수 있었다. 특히 토너먼트에 참가해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막강하고 정교해지는 AI를 상대로 전투 경험을 쌓기 좋았으며, 소소한 돈벌이도 가능해 일단 이긴다는 전제하에 항상 이득인 콘텐츠였다.
가장 좋은 점은 토너먼트를 통해 갑옷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몸 위에 집 한 채를 걸치고 다녔다는 중세 기사를 구현하려 했는지 상위 티어 갑옷은 한벌 한벌이 어지간한 중소 클랜 한두 개를 즉시 영입할 수 있는 수준의 고가였는데, 투기장에서는 완전 최고 수준은 아니더라도 적당한 갑옷을 쉽게 획득할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대규모 전쟁은 보는 맛도 있고 즐기다 보면 꽤 흥미진진하기도 한데, 병종 간 상성이 조금 애매했다. 특히 게임 내내 창병 비중이 높을수록 전반적인 전투 능력이 감소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는데, 대 기병전에서 월등한 성능을 갖춘 대신 방어 능력과 대 보병 전투 능력이 지나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기병 단일 구성으로 병력을 구성하는 AI가 없는 이상, 차라리 상성을 포기하고 창병 대신 보병과 궁수 위주로 병력을 구성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유저가 직접 창을 드는 행위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일단 조작감이 굉장히 어색할뿐더러, 창병이 기병을 상대한 뒤에 무의미한 존재가 되는 건 유저가 직접 조작해도 그대로였다.
그래도 전작과 비교해 전쟁 그래픽 및 박진감이 훨씬 향상됐고, 수많은 병력이 유저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장면을 지켜보는 건 굉장한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문제는 전쟁 이후에 발생했다. 특히 영주 처분 관련한 문제가 생기는데, 포로로 잡은 상대 영주를 제대로 처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평범한 마을 주민을 학살한 영주와 전쟁을 벌여서 승리한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영주들이 풀려나 버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스킬을 성장시켜 포로가 탈출할 확률을 0%로 만들거나 포로로 잡는 족족 전향시켜야 하며, 전향이 불가능한 영주들은 결국 처형해야 한다.
그러나 전투나 내정용 기술을 제쳐두고 포로 탈출을 막기 위한 스킬에 투자하는 건 너무 아까운 행위이고, 그렇다고 처형해버리자니 처형하는 순간 처형당한 영주가 어떤 인물이었는가와 별개로 유저 평판이 순식간에 바닥을 치게 된다.
내정 시스템도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다. 클랜 단위에서야 오손도손하게 꾸려나가는 재미가 있었지만, 섬세함이나 깊이가 없는 데다가 타국과 외교를 맺어도 AI가 하도 제멋대로다 보니 만족스러운 정치를 펼치기가 어려웠다.
시작 문화권이 아닌 지역 문화권의 도시를 점령하면 실시간으로 충성도를 잃게 되는 시스템도 귀찮았다. 고의적인 설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충성도를 올릴만한 정책은 거의 어지간하면 다른 영주에게 방해받게 되기 때문에 한창 전쟁을 치르다가도 주기적으로 반란을 진압하러 본토로 돌아가야만 했다.
공식 모딩툴이 2020년 10월 공개됐고, 전작 '워밴드'부터 '펜도르의 예언(Prophesy of Pendor)' 등 굵직한 모드가 잔뜩 출시되었던 만큼 '배너로드' 역시 다양한 유저 모드가 개발되었으며, 또 개발 중이다.
아쉽게도 유저 모드 개발 및 이용이 활성화된 게임들이 으레 그렇듯이 콘솔 버전에서는 모드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발사에서는 콘솔 버전에서도 유저 제작 모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지만, 지원된다 해도 PC와 동일한 수준은 힘들 거라는 단서를 달아둔 상황이다.
필수 모드같은 개념이 없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워밴드'가 출시 후 십수년간 생명을 이어온 이유 중 하나가 유저 모드라는 점을 고려하면 게임을 수년간 진득이 즐길 유저라면 PC 버전을 구매하는 게 나아 보인다.
멀티플레이도 전작과 비교하면 확실히 개선됐다. 물론 초장기 플레이가 기본인 싱글 플레이를 고스란히 옮겨두지는 않았고, 투기장이나 공성전 같은 전투 콘텐츠가 핵심이다.
대규모 전쟁이라는 특성상 적 하나하나가 지닌 AI가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싱글 플레이와 달리 적 병력을 운용하는 게 유저인데다가 유저가 직접 조종하는 캐릭터와 전투를 벌여야 하는 만큼 컨트롤이나 병력 운용 면에서 싱글 플레이와는 다른 재미를 제공했다.
유저가 소규모 용병 부대 사령관이 되어 타 유저와 겨루는 6:6 팀플레이 모드인 '캡틴' 모드도 흥미진진한 경험이었다. 다만 국가를 직접 고르는 게 아니라 여섯 국가 중 하나가 랜덤으로 배정되는 방식인데, 국가별로 유닛 특성 등이 달라 입문이 쉽지는 않았다.
문제는 적지 않은 유저가 상술한 모드 문제로 인해 PC 버전을 즐긴다는 점이다. 그나마 콘솔 유저 비중이 높은 북미나 유럽 서버에서 플레이하면 조금 낫지만, 그럴 경우 최소 100ms 이상의 끔찍한 지연 시간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다행히 개발진이 이른 시일 내에 PC-콘솔 간 크로스 플레이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힌 만큼, 근 시일 내에 콘솔 유저들도 한층 쾌적한 멀티플레이를 즐길 수 있을 전망이다.
제국 문화권 타블룻, 바타니아 문화권 바그찰, 아세라이 문화권 시가, 풀록 문화권 풀룩, 블란디아 문화권 무토레레, 스터지아 문화권 코나네 등 미니게임도 의외로 다양하게 즐길 수 있었다.
다만 소소한 돈벌이를 위해서는 미니게임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뿐더러, 간단한 보드게임 위주인 만큼 재미가 크지도 않았다. '할 수 있다'라는 점에 의의를 둬야 하는 셈이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 2: 배너로드'는 대체할 수 없는 게임이다. 중세 유럽(진짜 유럽이 아니긴 하지만)을 배경으로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병력을 이끌고 현실적인 전투를 즐길 수 있는 게임은 찾아보기 드물며, 개중 '배너로드'만큼 완성도가 높은 게임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현실적인 전쟁과 피 말리는 전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문제는 전쟁 '만' 재미있다는 점이다. 전쟁을 위한 군비 및 병력 마련, 장비 생산 등까지는 즐거움을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지만, 내정 파트는 다음 전쟁을 위해 참고 견뎌야 할 쓴 보약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전쟁은 재미있었다. 세계 통일까지 가는 과정은 험난하고 어려웠지만, 성취감도 있었다. '배너로드'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향후 십수 년간 대체될 수 없는 작품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는 점에 쐐기를 박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배너로드'를 대체할 게임은, 아마 십수 년에서 어쩌면 수십년 뒤 나올 '마운트 앤 블레이드 3'이 될 것이다.
리뷰/프리뷰
마운트 & 블레이드 2, 대체 불가능한 중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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