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라게임즈는 유비소프트가 개발하고 유통하는 'Anno 1800(이하 아노 1800)' 플레이스테이션 패키지 버전을 2023년 3월 16일 국내 정식 출시했다. 2019년 4월 15일 PC 버전 출시 후 약 2년만으로, 시리즈 중 처음으로 출시된 콘솔 버전이다.
'아노' 시리즈는 1998년 '아노 1602'를 시작으로 약 25년간 본편 7 작품, 외전 3 작품이 나온 도시 건설 게임 시리즈다. 2003년 '아노 1503' 이후 한글화가 이뤄지지 않았으나, '아노 1800'을 통해 20여 년 만에 공식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아노 1800'에서 유저는 섬에 세워진 도시를 관리해 경쟁자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올려야 한다. 다른 섬을 확보해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거나 경쟁자가 운영하는 섬을 강탈해 여러 도시를 함께 운영할 수 있으며, 따라서 도시 내 유통망 외에 섬 간 유통망 관리 능력까지 시험받게 된다.
캠페인은 스토리 전달보다 게임에 대해 알려주는 데 치중하는 편이며, 핵심 게임 모드도 캠페인이 아닌 커스텀 게임이다. 커스텀 게임에서 유저가 설정할 수 있는 요소가 꽤 상세한 편인데 아예 경쟁자를 없애 혼자서 도시 경영 콘텐츠만 즐기거나 경영 난도를 크게 내려 도시 꾸미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도시 건설 장르답게 다양한 자원과 건물이 제공된다. 자원을 수집한 뒤 그대로 활용하거나 가공에 필요한 설비를 지어 가공할 수 있으며, 일부 가공품은 여러 설비를 연계해 활용해야 완성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다른 시티빌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요소다.
중요한 건 시민 시스템이었다. 처음에는 농부에서 시작하지만, 게임 진행 수준에 따라 노동자, 직공, 기술자, 투자자 등 상위 계층 시민을 확보할 수 있다. 계층에 따라 역할이 다르고 내는 세금도 다르기 때문에 각 계층 시민을 전략적으로 확보해야 했다.
시민들은 생필품과 사치품을 요구한다. 생필품은 시민을 상위 계층으로 업그레이드 하는데 쓰이며, 사치품은 행복도를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계층마다 요구하는 자원 종류가 다르고 상위 계층 시민일수록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자원을 요구하기 때문에 높은 계층 시민을 확보할수록 유저에게 요구되는 운영 능력도 높아진다.
다행히 실업률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시민들은 일자리가 없더라도 어디에선가 돈을 창조해 생필품과 사치품을 구매한다. 또 교통 동선도 크게 고민할 필요 없는데, 일단 일자리를 얻은 시민은 직장이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불만 없이 출근하기 때문이다. 게임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걸 막기 위해 유저 편의를 봐준 셈이다.
플레이 중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신문은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시민들에게 영향을 줬다. 유저가 한 행동에 따라 매번 다른 내용이 나오는데, 효율을 중시하는 플레이를 위해 특정 분야를 희생하거나 페널티를 감수한 뒤 나중에 복구하는 식으로 도시를 운영할 경우 곧바로 부정적인 효과를 제시했다. 프로파간다를 통해 여론을 조작 할수도 있지만, 페널티가 만만치 않았다.
무역은 게임 흐름에 큰 의미가 없었다. 무역 수요가 있는 품목에서 유의미하게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해당 자원을 생산하는 설비를 자급자족에 필요한 수 이상으로 늘려야 했는데, 자원 시세가 하락하면 모두 잉여설비가 되며 무역을 포기한 것보다 나쁜 결과를 얻게 됐기 때문이다. 차라리 내수에 집중하며 내실을 다지는 게 편했다.
전투 시스템도 크게 복잡하지 않았다. 군사 유닛은 해군뿐이며, 경쟁자가 경영하는 섬을 공격할 때도 항구만 점거하면 소유권을 강탈할 수 있다. 복잡한 조작보다는 병력 양에 의존하는 편이었는데, RTS적 전투보다는 군사비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할당했는지, 할당된 군사비를 어떻게 소모했는지를 따지는 경영 콘텐츠의 일부로 느껴졌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보단 한 마리 토끼에 집중한 셈이다.
'아노 1800'이 지닌 특징 중 하나는 게임이 실시간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일시 정지는 지원하지만, 일시 정지 중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 덕분에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은 중반부터 숨돌릴 틈도 없이 게임이 정신없어지기 시작한다. 꾸미기를 중시하는 유저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 있는 부분인데, 바쁜 와중에 효율까지 고려하기 위해서는 도시 디자인을 위해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꾸미기에 집중하다가는 경쟁자들에게 밀려버리기 십상이었다.
다행히 청사진 시스템이 제공된다. 실제 건설 전에 건물과 도로 위치를 계획해둘 수 있고, 이미 건설된 구역을 복사한 뒤 다른 지역에 똑같이 건설할 수도 있다. 바쁜 게임 플레이 중 건물 하나하나를 일일이 배치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며, 동시에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도 도시 외형이 눈 뜨고 보기 힘든 수준으로 망가지지 않게 해주는 역할도 했다.
자신이 건설한 도시를 일인칭 시점으로 직접 돌아다녀 볼 수 있는 점도 게임 특징 중 하나다. 신항로 개척 시대가 마무리되고 산업혁명으로 접어드는 시기가 잘 재현돼 있으며, 각종 산업시설이나 거주 구역을 둘러보고 도시에서 날법한 각종 소음도 들을 수 있다. 놀이동산 경영 게임에서 자신이 설계한 롤러코스터 트랙을 일인칭으로 체험하는 일과 비슷했는데, 놀이기구와 비교해 규모가 훨씬 큰 만큼 느껴지는 감동도 달랐다.
게임 패드 조작이 직관적인 편은 아니지만, 장르 특성을 고려하면 최선을 다해 이식했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버튼이 한정적이고 마우스 사용이 불가능한 만큼 PC 버전보다 손이 좀 더 바쁜 편이긴 하다. 예컨대 튜토리얼에서는 '어선 선택 - 다이너마이트 장착 - 물고기 근처로 어선 이동 - 물고기가 아이템 사용 범위 밖으로 나가기 전에 다이너마이트 조준 후 투척'을 빠르게 행해야 하는데, 키보드-마우스였다면 아무 문제 없이 할 수 있었을 일도 패드 조작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PC버전에서도 진입장벽이 낮은 게임은 아니었다. 같은 이유로 콘솔 버전도 진입 장벽이 낮지 않다. 특히 튜토리얼이 불친절하다. 시민 시스템 등 '아노 1800' 특유의 시스템은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편이지만, 건설이나 자원관리 등 전반적인 게임 안내는 도시 건설 장르의 문법을 이미 학습한 유저를 상정하고 만들어진듯 했다. 장르 초심자라면 튜토리얼을 완수한 뒤에도 게임 진행이 난해할 수 있다. 콘솔 버전은 여기에 게임 패드 조작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새로운 진입 장벽이 추가됐다.
PC 버전을 이미 즐겨본 유저라면 굳이 콘솔 버전을 또 구매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콘솔 버전에는 PC 버전에 출시된 일부 DLC가 포함되어있지 않아 단조롭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최대한 원형을 유지한 채 진행된 이식인 만큼 PC판과 비교해 게임성에 차이도 없다.
그러나 '아노 1800'을 즐겨본 적 없는 유저에게는 추천할만하다. 장르 입문용으로 적합한 게임은 아니지만, PC 버전 출시 후 수많은 장르 마니아에게 검증된 명품 게임인 만큼 도시 건설 장르를 좋아한다면 구매할 가치가 있다.
리뷰/프리뷰
콘솔로도 거뜬한 도시 건설, 아노 1800
총 1055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