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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무난하게 재미있는 대서사시,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

작성자 :	등록일 : 2024-01-12 오후 4:59:53

라인게임즈는 산하 레그스튜디오가 개발한 신작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을 2023년 12월 22일 국내 정식 발매했다. 플랫폼은 닌텐도 스위치로, 한국어 더빙 및 자막이 제공된다. 국내 심의에서는 12세 이용가 등급을 부여받았다.

1996년 12월 10일 출시된 '창세기전 2'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개발 사실이 처음 발표된 2016년 11월부터 '창세기전' 지식재산권(IP) 팬들에게 기대 받아온 작품이다. 그러나 동시에 2023년 11월 체험판 버전 공개 이후 그래픽 완성도와 게임 최적화 문제로 정식 출시 전까지 혹평에 시달렸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후 개발진이 체험판 준비 일정상 한창 개발이 이뤄지던 2023년 2월 빌드를 체험판으로 제공했다는 점이 알려지며 정식 출시를 기다리자는 여론이 형성되기는 했지만,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한동안 한국 게임계에 뜨거운 감자였던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에서, 유저는 안타리아 대륙에서 벌어지는 전쟁 속에서 망국의 공주와 기억을 잃은 용병, 제국의 황태자 등 수많은 인간 군상이 모여 벌어지는 이야기를 지켜보게 된다.

주인공격인 캐릭터는 있지만, 여러 세력을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게임 특성상 군상극에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스토리 분량이 짧았다면 난잡할 수 있는 구성이나 스토리 호흡이 길고 각 인물 별 이야기를 충분히 보여주기 때문에 각 인물에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

스토리 진행 중 유저 상상력을 요구하는 장면이 꽤 많다는 점은 단점이다. 특히 대화 진행 중 대사창에 출력되는 캐릭터 초상화에 변화가 거의 없어 해당 캐릭터 감정선을 쫓아가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다. 컷신이 자주 등장하는 게임이라 아쉬움을 달래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표정 변화 정도는 있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플레이타임은 긴 편이다. 낮은 난도로 스토리만 감상하면서 플레이해도 수십 시간을 거뜬히 플레이할 수 있고, 높은 난도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투를 펼치기 위해 고심해 가며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100시간 이상 플레이도 가능하다. 클리어 후 해방되는 하드 난이도까지 플레이한다면 플레이 타임은 훨씬 늘어난다.

억지로 플레이타임을 늘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플레이타임이 길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강점으로 꼽히는 요인이지만, 스토리가 방대한 게임인 만큼 휴식 없이 장시간 플레이하면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개발진이 언급했듯 장편 드라마를 즐길 때와 비슷하게 매일 조금씩 플레이하는 게 좋을 듯했다.

가장 심한 피로감을 느꼈던 부분은 초반 챕터, 특히 챕터 15 즈음이었다. 스토리가 긴 만큼 본격적인 스토리에 들어설 때까지 준비 과정이 긴 편인데,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겠구나 싶은 15챕터에서 다시 전개가 늘어지는 부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게임을 길게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하루 플레이가 마무리 될 때 즈음에 15챕터에 들어설 경우 극도의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스토리 부분을 제외한다면 전반적인 게임 플레이는 인터미션과 전투가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인터미션에서 캐릭터를 육성하거나 아이템을 세팅하고 전투 파트로 넘어가는 식이다. 전투는 SRPG 방식으로, 그리드로 구성된 맵에서 캐릭터들을 조작해 전술적인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

전투는 전술 전투 모드와 모험 모드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전술 전투 모드는 캠페인이 시작할 때부터 넓은 전장에 유닛을 배치한 뒤 플레이하는 방식이고, 모험 모드는 심볼 인카운터 방식으로 구현된 맵을 탐험하다가 적과 조우하면 전투 화면으로 전환되는 방식이다.

어느 쪽이든 전장 규모가 타 SRPG 작품들과 비교해 좁은 편이기 때문에 게임을 진행할수록 광역 기술이나 초필살기를 가진 캐릭터들을 활용해 적을 일소하는 전략에 의존하게 됐다. 마장기가 추가되며 전투 양상이 한 차례 바뀌긴 하지만, 큰 흐름이 바뀌지는 않는다.

유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만한 요소다. 핵심 인물이 영웅적인 능력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는 방식을 선호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전투 흐름을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밸런스 조절 실패라고 여길 수도 있다.

초필살기 사용이 강제되지는 않는 만큼 원한다면 다른 전술을 세우고 싸울 수도 있지만, 전투 중 핵미사일 발사 버튼이 나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체감상 차이가 크다.

게임 난도 세분화는 조금 아쉽다.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은 쉬움과 일반, 어려움 세 난이도를 제공하는데, 이 중 어려움은 게임을 한번 클리어해야 추가되는 만큼 첫 플레이에는 쉬움과 보통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문제는 노말 난도가 생각보다 어렵고, 쉬움 난도가 지나치게 쉽다는 점이다. SRPG 경험이 많지 않은 유저가 노멀 모드로 게임을 즐길 경우 모험 모드에서 적을 최소한으로 처치하고 지나쳤다가 캐릭터 육성이 부족해 게임 플레이가 완전히 막힐 수 있고, 반대로 쉬움 난도는 승급 등 일부 육성 요소를 아예 무시하고 플레이해도 게임을 클리어 할 수 있다.

쉬움과 일반 사이에 중간 난도 하나가 더 있었으면 적당했을 것 같다.

그래픽 완성도가 높은 편은 아니다. 최소한 전문 개발사가 언리얼 엔진 4를 활용해 개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대할 만한 그래픽 완성도를 선보이지는 못했다. 도트 그래픽이 미려한 3D 그래픽으로 재탄생되기를 바라던 원작 팬이라면 아쉬울 수 있다.

문제는 그래픽 완성도를 희생했음에도 최적화가 완벽하게 이뤄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대규모 전투 장면에서는 종종 프레임레이트 저하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고, 로딩이 지나치게 길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개발사 역량 부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스위치는 출시 당시에도 경쟁 게이밍 콘솔들과 비교해 사양이 높지 않은 기기였고, 첫 출시 이후 7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날 그 한계는 더더욱 뚜렷해졌다. 레그 스튜디오가 서드 파티 개발사임을 고려하면 스위치로 이 정도 성능을 끌어낸 점도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이는 개발사 사정으로, 유저 입장에서는 그저 변명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언리얼 엔진 4로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유니티 엔진으로 개발했다면, 혹은 타 게이밍 콘솔로 출시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다.

UI 측면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이 엿보이기도 했다. 전투 중 그리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SRPG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을 듯 했고, 아이템 리스트를 페이지 단위로 넘기지 못하거나 상점에서 아이템 다량을 구매하기 어렵게 되어있는 점은 캐릭터 다수를 관리할 때 난점으로 다가왔다.

이 중 아이템 다량 구매 문제는 게임 특성상 동일한 아이템을 수십 개씩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다행히도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게임 시스템과 맞아떨어지면서 그렇게 느껴질 뿐, 번거로운 요소임은 분명하다.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은 무난하게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스위치 기준으로 높은 성능을 끌어냈고, 플레이타임도 매우 길어 오랜 시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SRPG 장르 특유의 재미도 잘 끌어냈다.

다만 중후반부 추진력을 위해 초반 전개가 늘어지는 구간이 길다는 점, 일부 시스템이 현세대 유저들에게는 낡았다고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단점이다. '창세기전' IP 자체에 흥미가 있는 유저라면 몰라도 SRPG라는 장르에 입문하기 위한 작품으로는 조금 부적절하다.

가장 큰 단점은 게임을 개발한 레그스튜디오 콘솔 게임 개발진이 1월 11일을 기점으로 해체됐다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속편 개발 여부가 불투명해졌는데, '창세기전: 회색의 잔영'이 속편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게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치명적인 문제다. 게임 구매 전 '뒷이야기를 영원히 모르게 될 수 있다'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겜툰 박현규 기자 news@gamt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