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태초에 현세가 만들어 진 이후 새롭다는 단어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으며, 한 번 인기를 끌고 그 인기를 모았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리도 없다는 것이다. 실수 한 번으로 안드로메다로 가는 일들이 많은 연예인들의 사례를 보면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기도가 영원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는 비단 연예인이나 정치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게임의 인기도 영원한 것은 없다. 현재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임이더라도 어느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그야말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 막강한 인기를 구가하다 크게 미끄러진 게임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진리를 깨닫게 한다.
게임사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게임을 빅 히트시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게임사들의 경우를 우리는 종종 지켜봐 왔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 이르기까지 큰 인기를 얻은 게임들도 그 인기가 영원할 수는 없는 법.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기는 퇴색되고 기세는 꺾여, 미래를 대비하지 못한 게임사도 그와 궤를 함께 하며 하락세를 겪는 경우는 결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에 이르러 시장의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게임사들도 이런 ‘하락세’를 타게 되는 일이 있을까. 신작을 발표만 했다 하면 히트를 칠 것만 같은 ‘포스’를 뽐내고 있는 막강한 라인업과 위세를 자랑하는,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게임사가 하락세를 탈 가능성이 있을까.
아주 낮은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결코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국내 게임 시장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게임은 ‘떠오르는 신흥 장르’인 AOS의 선두주자, 레전드오브리그(이하 LOL)이다. 이 게임의 인기도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찾잔 속의 돌풍’으로 시작했던 인기가 오랜 기간 동안 굳어져 왔던 국내 게임 시장의 순위를 크게 뒤집어 놓을 정도로 큰 태풍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다 할 마케팅도 없이, 변변찮은 서비스를 시작으로 국내 유수의 게임들을 물리치고 오로지 콘텐츠의 힘으로 상위권에 랭크되는 모습은 그야말로 게임 본연의 목적, 진정한 본질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하지만 국내 게임 시장이 태동한 이래 지금까지 게임 유저들로 하여금 가장 많은 신뢰를 쌓아 온 게임사를 꼽는다고 한다면, 역시 블리자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워크래프트 시리즈를 시작으로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막강한 블리자드 게임 세계는 오랜 기간 동안 국내 유저들은 물론 전 세계 게임 유저들을 매료시켜 왔다.
당연히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세계 게임 시장 ‘1인자’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는 블리자드. 하지만 올해, 놀랍게도 블리자드는 사상 처음으로 대대적인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또 다른 세계적 게임사인 액티비전과의 합병 이후 승승장구 실적상승 그래프만을 그려 왔던 블리자드가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블리즈컨 2010에서 e스포츠 저작권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밝히는 폴 샘즈 COO의 모습. 하지만 그 강경한 입장은 시장에서 이렇다 할 효과를 내지 못한 채 많은 잡음만을 냈고, 결국 스타크래프트2 시장 출시와 e스포츠 연착륙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비판만 받았다.
블리자드는 보도 자료를 통해 전 세계 지사에서 통합 600명의 직원을 해고한다고 밝혔다. 개발팀에서 10%, 마케팅, 기획, 운영, 영업 등의 부서에서 나머지 90%의 인력을 해고한다는 것이다. 당장 국내 지사인 블리자드코리아의 직원들 또한 인력감축 대상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블리자드코리아는 전체 약 300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를 하고 있다.
600명이라는 삭감 폭은 그야말로 대규모 정리해고임에 틀림이 없다. 블리자드의 전 세계 지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직원 숫자는 모두 45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에 따르면 600명 정도는 전체 직원의 13%에 달하는 수준이다.
블리자드가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실시한 것은 2011년의 성장률이 더디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블리자드는 지난해 12억 43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2010년 대비 25%감소한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액티비전의 모던워페어 신작의 흥행으로 인해 액티비전블리자드는 약 6%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단일로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던 만큼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사실 2012년에 등장할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WOW)의 새로운 확장팩과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 디아블로3라는 신작 타이틀을 출시할 블리자드에게 있어서 WOW가 분전한 뒤로 신작의 공백을 스타크래프트2가 메워줘야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2가 ‘믿는 구석‘이었던 한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 하락세가 불가피, 이런 결과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들이 완성도에 확신을 가지기 전까지 많은 물리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투자를 해서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블리자드의 특성 상 하나의 ’신상품‘이 시장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의 리스크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는 점도 부메랑으로 작용했다. 블리자드 또한 “실적 하락은 디아블로3의 개발 비용 투자가 원인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의아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엄청나고도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렸던 블리자드가 한 해의 실적 부진으로 대규모 인력감축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분명 그럴 법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회사의 최대 캐시카우인 WOW개발팀은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되고, 개발 인력은 600명 해고인력 중 10%라는 비중을 차지하는 데 불과하다는 것에서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 동안 블리자드가 성장세와 더불어 비정상적인 규모의 채용으로 엄청난 몸집 불리기를 했다는 것에 대한 부작용일지도 모른다는 해석인 것이다.
전 세계적인 불황 등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를 위시한 게임산업은 매년 꾸준한 성장세로 일자리를 만들고 천문학적 투자가 이루어져 왔다. 블리자드는 2010년에 채용 인력으로 1000여 명을 채용했으며, 2012년 현재에도 여전히 다양한 분야에서 인재를 모집하고 있다. ‘365일 인력을 채용하는 회사’라는 별명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 것이 바로 블리자드다.
때문에 최초의 하락세를 그렸던 만큼 그 동안 비정상적으로 불려져 왔던 회사의 몸집과 거품을 빼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감했다는 것이다. 블리자드의 마이크 모하임 공동설립자 겸 CEO는 발표문에서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조직 내 팀들과 업무절차에 대해 지속적인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우리의 조직을 거대하게 성장시켜왔고, 전 세계 커뮤니티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격적인 인프라 투자를 해왔다"며 "하지만 조직의 변화하는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어려운 선택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 2012년 블리자드는 간판 차기 타이틀들의 등장으로 또 다시 성장하고, 또 많은 인력을 채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블리자드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을까? 어쩌면 나태해 진 조직에 강력한 자극을 주기 위한 극단적 선택이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날이 치열해 지는 시장에서 잃은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블리자드라는 게임 브랜드가 전 세계적으로 확고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끊이지 않는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었던 만큼, 개발력의 핵심인 개발인력의 구조조정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다른 분야에서의 거품을 빼겠다는 의도로 풀이될 수 있다.
더불어, 개발 이외의 분야에서 회사의 상품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지 못했다는 분석이 깔려 있기도 하다. WOW의 하락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공백을 메워줘야 하는 스타크래프트2의 강점을 전 세계 시장에 최대한 전달하지 못해 지지부진한 성과를 거두게 했다는 것은 개발 외적인 분야에서의 퍼포먼스를 최대한 내지 못했다는 오너 측의 분석일 수도 있다. 스타크래프트2의 흥행의 절대 열쇠였던 한국 시장에서는 e스포츠 저작권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해 또 다른 e스포츠 붐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과거 LOL을 개발한 라이엇게임즈가 해당 게임의 초창기 투자를 제안했을 때 이를 거절했다며 게임을 보는 안목도 부족해졌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게임 시장에서 압도적인 1인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블리자드의 이번 대규모 인력 감축은 국내 게임 시장에도 많은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거듭되는 성장, 그리고 투자에 ‘거품’에 취해 냉정하게 시장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문제가 될 수 있고, 이에 대한 위기감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1인자의 질주는 영원할 수 없기에, 블리자드의 빠른 결단은 그래서 주목하고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블리자드는 2012년 다양한 타이틀 공개로 추가적인 실적 상승을 기대받고 있다. 디아블로3를 비롯해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 블리자드도타, WOW~ 판다리아의 안개 등의 타이틀을 통해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또 다시 블리자드는 경이적인 상승세를 기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상승세의 거품에 가려져 있던 ‘칼날’이 회사를 공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경계심이 눈빛을 번뜩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섣부르게도 보이는 1인자의 결단. 하지만 일간 수긍이 가기도 하는 결단.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경계심을 품는 부분은 분명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 번 시장에서 잃은 신뢰를 되찾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게다.
단순히 실적부진으로 인해 대규모 인원감축을 했다는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곱씹어 볼 부분이 많은 블리자드의 구조조정. 국내외의 시장에서 블리자드와 경쟁을 해야 하는 국내 게임 시장 업체들이 이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겜툰 송경민 기자
songkm77@gamt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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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INSIDE 33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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