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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추억의 프로게이머] 조이기의 황제, ‘The Marine' 김정민

작성자 :	등록일 : 2010-11-03 오전 11:43:35

프로토스와 저그, 테란이라는 스타크래프트의 세 종족 중 가장 기동력이 느린 종족은 무엇일까. 의견차가 있을 수 있지만, 기동성 면에서는 테란이 가장 느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떨어지는 기동성을 방어능력과 뚝심, 건물을 이용한 방어진지 구축 등으로 이겨내고 있는 종족이기도 하다. 때문에 테란이라는 종족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에는 ‘방어’와 ‘버티기’라는 말이 항상 따라붙기도 했다.

그래서 테란의 운영 중에는 일정 지역에 적절히 건물을 배치해 상대방의 움직임을 차단하고 자신의 에어리어를 서서히 넓혀 나가는 방식이 유력한 전략적 선택기로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넉넉하게 경기를 운영해 나가면서 서서히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경기를 몰아 나가는, 이른바 ‘조이기’라고 하는 운영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길어지고 다소 지루해지는 경기 내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다소간의 유저들이나 e스포츠팬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운영방식. 그러나 이런 운영방식의 기틀을 잡고 정형화 한, ‘프로게임계의 레알 마드리드’KTF(KT롤스터의 전신)의 일원으로 활약했던 ‘The Marine'김정민은 조이기의 궁극화, 이른바 ’3만년 조이기‘로 승화시키며 특유의 매력을 발산했던 게이머이기도 했다.

사실 김정민이라는 프로게이머를 떠올리면, 같은 테란 게이머들 중 최연성이나 임요환, 이윤열, 혹은 현재의 이영호와 같이 ‘당대 최강’이나 한 시대를 풍미하며 리그를 쥐락펴락했던 선수들과는 그 인지도나 실력, 혹은 경력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과거의 레전드’라고 불릴 만한 게이머는 아니었던 것이다.

프로게이머로써 걸었던 길을 봐도 특이할 만한 사항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2001년 SKY 스타리그 3위, 2002년 SKY 스타리크 8강, 2004년 하나포스 센게임 MSL 3위 입상이 최고 성적이며, 99년 데뷔해 06년에 은퇴, 데뷔 5년 후에 메이저에 입성하고 22세를 넘어서 개인리그 메이저 4강을 찍었던 22명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프로게이머로써의 경력의 전부라 할 만 하다.

여기에 프로게이머로써는 당대 최강의 프로게이머들이 소속되어 ‘e스포츠계의 무적함대’, ‘스타크래프트 게임단의 레알 마드리드’로 불렸던 KTF매직엔스 소속으로 활약해 팀 플레이어로써 활약한 것이 그의 경력보다 더 선명하게 올드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기억되어 있기도 하다. 물론, 팀으로써도 라이벌인 SK텔레콤에 밀려 줄곧 2위만을 기록했으니 어쩌면 상복도 매우 없는 선수로 기억될 만하다.

△ G.O, KTF에서 테란 프로게이머로 이름을 날린 김정민.

때문에 e스포츠팬들은 프로게이머인 ‘The Marine'보다는 06년 은퇴 이후 온게임넷 해설자로 활약하며 얻은 별명인 ’해변김(해설로 변신한 김정민의 준말)‘으로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니, 현역으로 활동할 때도 게임 실력보다는 잘 생긴 외모로 방송사에서 팬심을 모으게 하는 선수로 지목되어 다양한 모습(반짝이는 트로트 의상을 입고 엄청난 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으로 해변의 여인을 불렀던 오글거리는 모습 등) 현역으로 활약할 때보다 은퇴 후 해설자로써 더 많은 인기를 누린 것이다.

그런 프로게이머 김정민을 추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세간에 들고 나왔던 운영방식, 테크트리의 정립이 이후 프로게이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집안 사정으로 인해 인문계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강동공고에 진학한 김정민은 98년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4월에 출시된 스타크래프트를 접하게 된다. 전국의 중, 고등학생들을 단숨에 매료시키며 PC방의 확산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었던 스타크래프트에 김정민 역시 빠질 수밖에 없었다.

친구를 따라간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접한 그는, 06년 은퇴 순간까지 한 순간도 손과 눈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뗀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밥값이 없어서 컵라면 하나도 그림의 떡처럼 생각하고 있던 시절, 1세대 프로게이머들이 육성되는 환경은 현재의 환경보다는 훨씬 열악했고, 스폰서도 없던 시절의 김정민에게 차비는 곧 게임비로 계산이 되기 일쑤였다. 40~50분 정도를 걸어가는 길에 그 날의 게임을 복기하는 시간으로 만들었던 그는 스타크래프트에서 유독 강했던 자신의 승부욕을 발휘했다.

△ 은퇴 이후 온게임넷에서 해설위원으로 활약한 이후 인기가 더 높아지는 현상을 낳기도 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그의 성격(그렇기 때문에 게임 플레이에서도 도박적인 전략보다는 보다 더 완벽한 승리를 노렸는지도 모른다)은 이런 유독 강했던 승부욕과 어우러져 관련된 서적과 정보를 닥치는 대로 모으게 했다. 그는 유한맵에서 당대 최고였던 국기봉과 신주영 등의 선수들과 겨루며 실력을 키웠고, 1년 반이 지난 18세 되던 해, 2000년 KBK 마스터즈 2000 S1에서 장일석을 2:0으로 꺾고 우승해 1천만 원의 우승 상금을 획득해 그제야 부모님에게 전문적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그를 눈여겨 본 조규남 감독(현 CJ엔투스 감독)의 발탁으로 2001년 G.Q(CJ엔투스의 전신)에 입단하며 강민, 최인규 등과 함께 팀의 주축 멤버로 활약하게 된다. 그 이후 2003년 6월경 KTF매직엔스로 이적 이후 변길섭, 조용호, 홍진호, 강민, 박정석 등과 함께 활약하게 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현역에 있으면서 그리 큰 빛을 보지 못했던 1세대 프로게이머였던 김정민이지만, 유형적인 부분보다 무형적인 면을 더 크게 평가받고 있다. 바로 현재의 스타크래프트와 테란의 플레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선구자로써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정석적인 플레이를 선호한 김정민의 플레이는 외모 때문에 붙은 별명인 ‘귀족테란’이라는 닉네임보다 ‘정석테란(본인은 이 닉네임을 가장 싫어하기도 했다)’이라는 별명이 더 먼저 붙었는데, 승리를 위해서 그만큼 착실하고 안전한 플레이를 선호했다. 그리고 이 정석적이고 착실한, 느리지만 단단한 플레이를 기초로 서서히 경기를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운영해 나가는 방식이 바로 ‘3만년 조이기’였다.

기본적으로 원팩토리 이후 더블커맨드, 그리고 6팩토리에서 꾸준히 메카닉 유닛(주로 시즈탱크)를 생산한 뒤 에어리어를 넓혀 나가며 가스 멀티가 없는 미네랄 멀티를 확보, 유리한 거점 지역에 미사일 터렛과 벌쳐의 스파이더 마인, 그리고 심시티와 시즈탱크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상대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 나가는 김정민식 특유의 조이기 경기 운영은 이후 테란의 유력한 운영 방식의 큰 축으로 자리 잡았으며, 맵에 따라 이 빌드를 대항하는 프로토스와 저그, 그리고 상대 테란들의 운영과 빌드가 등장하면서 플레이어들의 치열한 머리싸움과 빌드 싸움을 연쇄적으로 부르는 효과를 가져왔다.

△ 2001년 SKY배 김동수와의 경기 역시 명 경기로 손꼽히고 있다.

이런 김정민의 진가가 확실히 드러난 해는 KTF시절이었던 2004년이라고 할 수 있었다. LG IBM PC배 MBC게임 팀리그 최종 결승전에서의 명승부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레전드급 경기로 김정민이라는 이름과 그의 운영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당시 KTF는 단 1패도 기록하지 않은 채 결승전에서 자신들에게 승자조 결승전에서 패퇴한 뒤 패자조 결승전에서 슈마 G.O를 꺾고 결승전에 올라 온 ‘라이벌’SK텔레콤을 맞이했다. 최종 결승전에 직행한 KTF는 상대팀의 선봉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고, 4U의 실질적 에이스였던 ‘괴물’최연성을 지목해 자신들은 ‘불꽃테란’변길섭을 내세워 최연성을 조기에 봉쇄할 작전을 세웠다.

그러나 2004년 2월 28일, 장충체육관에서 펼쳐진 LG IBM PC배 팀리그 결승전에서 4U의 선봉 최연성은 데토네이션에서 변길섭을, 엔터더드래곤에 ‘영웅’ 박정석을, 페러럴라인즈에서 ‘목동저그’ 조용호를 차례로 연파하며 기세를 올렸다.

반대로 대망의 결승전에서 굴욕의 올킬을 당할 위기에 처한 KTF는 4경기 짐레이너스메모리에서 김정민을 내세웠다. 앞마당에 가스가 없는 맵의 특성 상 다수의 벌처 싸움이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테란 대 테란의 경기. 김정민은 최연성과의 벌처 교전에서 패퇴하며 본진에 고립이 됐고, 최연성은 벌처로 김정민을 조이며 차분히 경기를 풀어 나간다. 그러나 침착하게 꾸준히 벌처의 숫자를 모은 김정민은 최연성의 벌처 조이기 라인을 돌파, 2스타포트 레이스를 시도하고자 했던 최연성의 약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역전 승리를 이끈다.

‘알고도 못 막는’최연성의 폭주를 막은 뒤의 5경기, 김정민은 ‘악마’박용욱을 상대로 데토네이션에서 전진 2게이트웨이 질럿 필살 공격을 질럿-포톤 러시를 막아내고 자신의 특기인 3만년 조이기를 시도한다. 이후 한 차례 조이기가 뚫리며 앞마당까지 전선이 후퇴되어 패색이 짙어지지만, 다시 한 번 SCV를 동원한 필사적인 수비로 박용욱의 앞마당 공격을 막아내고 3만년 조이기를 재시도, 이번에는 중앙을 완벽히 장악해 승리를 만들어냈다. 차분하고 정석적인 플레이로 자신의 특기를 발휘한 김정민의 착실한 운영이 빚은 불굴의 역전 경기라 할 만했다.

△ KTF에서 김정민은 많은 스타플레이어 선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활약했다.

역올킬이 눈에 아른거리며 다가오는 순간에서, 그러나 김정민은 다음 상대인 김성제를 상대로 2팩토리 이후 앞마당을 파괴시키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도 몰래 캐리어를 발견하지 못해 분루를 삼키고 만다. 조이기 스타일과 철두철미한 경기 운영을 상대로 프로토스의 캐리어가 해법이라는 것이 통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후 김정민은 2004년 하나포스 센게임배 MSL 승자조 결승전(최종성적 3위)에서 최연성과 맞붙었고, 최연성은 레이스로만 김정민의 배틀크루저와 발키리를 제압하는 괴물같은 모습을 보이며 최강의 테란 프로게이머로 우뚝 서게 된다. 비록 최고의 전성기를 시작한 최연성에게 패퇴했지만, 그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테란 프로게이머로써 자리한 김정민이기도 했다.

김정민이 연출한 최고의 명승부는 2004년에 또 나왔다. 2004년에 열린 KT-KTF 프리미어 리그에서 송병석, 이재훈, 박정석이라는 3명의 프로토스를 상대로 특유의 완벽한 3만년 조이기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알린 것이다. 이처럼 다수의 방송 명경기로 김정민은 테란의 운영 체계는 물론, 타 종족들의 대처 방법과 또 그 수를 역으로 읽어내는 테란의 움직임까지 파생시키게끔 했다.

김정민은 프로게이머로써의 자신을 말해주는 또 하나의 단어인 ‘3만년 조이기’에 대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정석테란’이라는 단어를 싫어할 만큼 그는 정형화 된 자신의 플레이나 운영을 싫어했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할 만큼 단단한 운영의 끝에 승리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지독하게 승부욕을 불태웠던 선수였기에 승리를 위해 특유의 운영을 만들어 낸 것이다.

△ 현재 군 복무중인 ‘해변김’. 제대 이후 이후 성공적인 프로게이머 출신 해설가로써의 역량을 발휘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런 김정민이 정형화 시켜 놓은 테란의 빌드와 플레이는 이후 ‘퍼펙트 테란’서지훈, ‘신형엔진’전상욱의 중후반의 단단함에 영향을 미쳤고, 고인규 등으로 이어졌다. 이들 뿐만 아니라 모든 테란 프로게이머들에게 김정민이 구축해 놓은 플레이 스타일과 운영능력은 귀감이 되었고 또 보고 배워야 할 교재가 되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전체적인 테란의 플레이에 큰 영향을 미친 그의 플레이가 이후 후배 프로게이머들에게 미친 영향은 상당히 지대하다 평할 만 한 것이다.

비록 ‘수면류’라고 불리며 다수의 팬들에게 ‘지루함 때문에 팬심을 잃게 하는 플레이 스타일’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테란의 수비와 정석적 운영에 큰 영향을 미쳤던, 1세대 프로게이머로써 임요환, 최인규와 함께 테란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The Marine’김정민. 화려한 우승 경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으로 말미암아 후대에 전달되는 ‘유산(遺産)’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프로게이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