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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게임 만평] WHO 게임 장애 질병 분류 임박, ‘쇠귀에 경 읽기’

작성자 :	등록일 : 2019-05-02 오전 11:31:09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이하 WHO)가 '게임 장애(Gaming disorder)'를 질병으로 분류하고 ‘게임 과몰입(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하려 한다. 오는 5월 20일부터 28일까지 스위스에서 총회를 열고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이하 ICD-11)’에 해당 내용을 실을 계획이다.

‘ICD’는 WHO에서 발표하는 국제 표준 분류 규정이다. 사람에게 발생하는 질병 및 사망 원인을 다룬다. ‘ICD-10’이 최신판으로, 1983년부터 1992년까지 개발돼 사용 중이다. 오는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 WHA)로부터 'ICD-11'이 승인될 예정이다.

‘게임 장애’가 ‘ICD-11’에 정식 등재되면 2022년부터 ‘게임 과몰입’은 질병 코드로 분류된다. 진단은 게임 이용 빈도, 게임 이용 강도, 게임 이용 시간 등 세 가지를 12개월 이상 통제하기 어려울 때를 기준으로 한다.

우리나라는 ‘ICD’를 기반으로 통계청이 주도해 'KCD(Korean Standard Classification of Diseases,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를 만든다. 현재는 2015년 발표된 ‘KCD-7’을 사용하고 있다. KCD는 5년에 한 번 개정되는데, 개정 준비에만 2년 이상이 소요된다. 이 때문에 2019년 'ICD-11'에 '게임 장애'가 등재되더라도 2020년 발표될 'KCD-8'에는 등재될 가능성이 작다.

다만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이 “WHO에서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인정하면 받아들이겠다”고 언급한 바 있고, ‘ICD’에서 질병으로 분류된 항목이 ‘KCD’에 등재되지 않은 사례는 한 번도 없으므로, 2025년 개정될 ‘KCD-9’에는 ‘게임 장애’가 등재되리라 예상된다.

지난 2015년 WHO는 인터넷에 공개한 'ICD-11' 초안(http://icd.who.int/)에서부터 '게임 장애'와 '게임 과몰입'을 공식 질병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게임 장애'는 'ICD-11' 초안 6번째 항목인 ‘정신적, 행동적 또는 신경 장애(Mental, behavioural or neurodevelopmental disorders)’에서 ‘물질 사용 또는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Disorders due to substance use or addictive behaviours)’ 하위 항목인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Disorders due to addictive behaviours)’로 분류됐다.

항목을 살펴보면 ‘게임 장애’는 게임을 지속적,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면서 발생하고, 게임이 일상생활이나 직장생활 등 삶과 관련한 다른 활동보다 우선순위가 높아진 경우와 게임 플레이 시간, 횟수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경우를 의미한다. 하지만 ‘게임 과몰입’에 대한 명확한 진단 기준이 없어 학계에서는 여러 의견이 나왔다.

WHO 정신 건강 및 약물 남용 책임자 블라디미르 포즈냑(Vladimir Poznyak) 박사는 “술을 마셔도 대다수 사람은 장애를 갖지 않는다”며 “게임을 즐기는 사람 대부분도 장애를 갖고 있지 않지만, 특정 상황에서 게임을 남용해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점은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게임연구회(International Gaming Research Unit) 이사 겸 노팅엄 트렌트대학교 심리학 교수 마크 그리피스(Mark Griffiths) 박사는 “술, 담배, 마약 등은 중독에 따른 금단 현상이 명확하나, 게임은 현재까지 명확하게 금단 증상이 밝혀지지 않아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게임 과몰입’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며 "게임을 플레이한 시간보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발생한 부정적인 영향을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게임 업계에서도 ‘ICD-11’에 ‘게임 장애’가 등재되는 데 반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8년 4월 5일에는 전국 40개 대학 게임 관련 학과 대표가 참여한 가운데 전국게임관련학과협의회가 발족했고, 같은 날 한국게임학회는 전국게임관련학과협의회와 함께 ‘게임 장애’ 질병 분류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학회/협의회는 ‘게임 과몰입’ 질병 분류를 강력히 반대하고, '위험한(Hazardous)', '중독(addictive behaviours)', '장애(disorder)' 등 부정적 인식을 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우려를 표했다. 정신의학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for Mental Disorders Fifth Edition, DSM-5)'에서도 '게임 과몰입'을 '근거가 필요한 항목'으로 싣고 있는 부분을 예로 들면서 '게임 과몰입'에 대한 정의, 원인, 증상에 대한 사회적, 의학적 기준이 없는 점도 지적했다.

2019년 4월 29일 한국게임산업협회는 WHO ‘ICD-11’ 의견 수렴 사이트를 통해 ‘게임 장애’ 질병 코드 분류에 대한 반대 의견을 냈다. 의견서에는 ‘게임 장애’를 규정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 부족, 유저가 지닌 복합요인에 따른 ‘공존 장애(Comorbidity)’ 가능성, 범죄자가 범죄 원인을 게임으로 돌리거나 악용하는 ‘병적 이득(morbid gain)’ 오용 사례 증가 등을 우려했다.

전 세계 학계에서도 ‘게임 과몰입’ 질병 분류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2017년 12월 임상심리학 분야 오픈 액세스 학술지 ‘행동 중독 저널(Journal of Behavioral Addictions)’에서는 학자 20명 이상이 "'게임 과몰입'은 아직 과학적인 입증이 충분하지 않아 질병 분류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2018년 3월 1일에는 같은 학술지에서 게임 분야 연구 전문가 36명이 ‘게임 과몰입’ 질병 분류 반대 의견을 내고 "새로운 질환을 공식화하기 전에 ‘과몰입(중독)’이라는 개념부터 명확하게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초 WHO는 2018년 5월 관련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학계 및 게임 업계로부터 반대하는 의견이 나와 유예 기간을 1년으로 정했다. 이 기간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게임 업계와 학계에서 반대 의견이 거세게 나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2019년 5월 ‘ICD-11’ 승인을 앞두게 됐다.

게임 업계는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ICD-11’이 승인되고 ‘KCD’에 반영된 후 정부 주도 규제 강화를 우려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가 ‘KCD’를 규제 강화 근거로 삼아 청소년 게임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게임 셧다운제’를 모바일 플랫폼으로 확장하거나 ‘게임 과몰입’ 세금을 신설, 징수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 과몰입’과 ‘게임 장애’을 새로운 질병으로 분류할 명확한 과학적 근거가 없어 게임 업계와 학계에서도 반대하고 있는데, WHO는 오는 5월 ‘게임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고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인정하는 'ICD-11'을 승인하려 한다"며 "WHO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쇠귀에 경 읽는’ 상황을 만들고 있으므로, 앞으로 전 세계 게임 업계 및 학계로부터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림 텐더 / 글 겜툰 박해수 기자(caostra@gamt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