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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미연시게임의 역사] 1부-‘미연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

작성자 :	등록일 : 2008-09-29 오후 3:07:56

작금의 ‘미연시게임’이라는 뜻은 단순히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말의 줄임말로만 통용되고 있지 않다. 미소녀들이 게임상에 등장하고, 그 미소녀들과 연애를 하기 위한 작업(?)을 게임 콘텐츠로 만들어서 그것을 결집시킨 게임을 미연시게임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에는 미소녀들이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 중심 게임을 미연시게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애를 목적으로 하는 게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연시게임이라는 장르로 인식되는 게임들도 여럿 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미연시게임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무엇인지는 웬만한 게이머라면 대충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매우 폭 넓어진 지금에 와서는 온갖 콘셉트의 미연시게임들이 시장에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는 추세다. 물론 그 진원지는 단연 일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내 음지의 마니아들의 숫자를 알고 있는 몇몇 게임사들은 국내산 미연시게임들을 출시하기도 했었다.

△ 현재 미연시계의 ‘레전드’로 군림하고 있는 엘프사의 홈페이지

하지만 대부분 남성들의 압도적인지지(?)를 받고 있는 미연시게임들은 남녀칠세부동석을 주창했던 한국에서는 ‘초절정 오덕후 변태게임’으로 치부될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미연시게임의 시초가 남자와 여자의 성 행위 가이드를 단순한 그래픽으로 가르쳐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래픽의 묘사율이 더욱 좋아지고, 여러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계속해서 추가되면서 현재 훌륭한 게임성을 보유하고 있는 미연시게임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미연시게임에 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성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거나 게임성이 엉망인 경우에는 아무리 ‘서비스신’이 화끈하다고 할지라도 지탄의 대상이 된다. 맹목적인 저질 게임이라고.

자, 이 대목에서 궁금하지 않은가? 과연 미연시게임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계기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는지. 그리고 남녀평등사회에서 왜 ‘미소녀’게임들만 등장하고 있는 것인지. 지금의 미연시게임들이 어떤 변화를 해 왔는지. 그리고 어떤 주옥같은 게임들로 인해 현재의 주옥같은 명작들을 탄생시킨 것인지.

자, 이제부터 그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코에이(KOEI)라는 게임사의 이름을 떠올려보자. 어떤 이미지들이 생각이 날까? 삼국지 시리즈, 진 삼국무쌍, 메탈기어솔리드, 위닝일레븐 등 수많은 명작들을 만들어 낸 대단한 게임 메이커라는 이미지가 대부분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코에이의 명작 리스트에는 미연시게임 유저들에게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게임이 하나 더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 바로 미연시게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명작인 도키메키 메모리얼 시리즈이다. 또한, 지금의 미연시라는 게임 장르를 있게 한 게임회사 또한 코에이다(의외로 믿기 힘들겠지만).

그러나 미연시게임 중에서도 18금 게임이 아닌 ‘순수한 미연시게임’으로 추앙받고 있는 도키메키 메모리얼을 만든 코에이지만, 그것을 시작한 게임은 매우 불순한 것이었다.

△ 원래는, 단순한 부부생활의 성인용 교육 소프트웨어였다

1982년 코에이(당시의 사명은 코에이마이크로컴퓨터시스템)가 제작한 나이트 라이프(Night Life)라는 게임은 단순한 성인용 소프트였다. 말하자면 부부간의 성 생활의 지침서같은 것이었는데, 성인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게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단순히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을 지금으로써는 그래픽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실루엣으로만 표현한 소프트웨어였다.

하지만 이 나이트라이프가 은근히 인기를 끌면서, 당시 각 게임사들은 선풍적으로 성인용 게임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에는 제지라든가, 혹은 성인용 게임에 대한 규제법 등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노골적인 게임이 대부분이었다. 이듬해인 1893년에 전에 없던 약 10개 정도의 성인용 게임이 시장에 등장했다는 것은 나이트 라이프가 당시 ‘소프트웨어가 표방하고 있는 의도와는 반대로’인기를 누렸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당시 일본 게임업계는 PC-9801 시리즈를 비롯한 일제 PC에 의해서 PC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급속도로 PC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과 보급률이 늘어났기 때문에 자국 내 게임사들은 그것을 노린 성인용 게임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코에이를 비롯해 당시의 에닉스(현 스퀘어에닉스), PSK(퍼스콤숍코치), 츠쿠모 전기 등 현재 일본 내 PC판매점들도 성인용게임의 제작과 판매를 하기 시작했다.

△ 80년대부터 부각된 로리타의 존재감에 편승하기 위해 제작된 에닉스의 ‘로리타 신드롬’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챔피언 소프트(현 앨리스 소프트)의 1983년작 어택 히로미쨩(アタック! 宏美ちゃん)을 시작으로 1984년에 PSK의 로리타(Lolita)시리즈와 앨리스(Alice) 에닉스의 로리타신드롬(ロリ-タシンドロ-ム), 일본 팔콤의 여대생 프라이베트(女子大生プライベ-ト), 챔피언소프트의 마코쨩의 비밀(魔子ちゃんの秘密), 아스키의 트라이앵글 정글(トライアングル・ジャングル)과 캐롯(キャロット), 워터워커(WATER WORKER) 등이 등장했다.

사실 1984년 챔피언 소프트의 4차원소녀 리디아(四次元少女リデイア)를 필두로 로리타 신드롬 시리즈 등의 게임들이 직접적으로 그래픽으로 표현된 미소녀들을 등장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떤 게임이 시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혹자는 로리타 시리즈라고도, 혹은 리디아라고도 한다) 아무튼 이때부터 성인용 소프트에 그래픽으로 표현된 게임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래픽으로 표현된 미소녀들이 등징했다고는 해도 지금 보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수준이지만.

하지만 이때의 게임들은 ‘미연시게임’이라는 호칭이 붙을 수 없는 단순한 ‘벗은 여자 그림보기 놀이 영상물’에 불과했다. 그래서 어덜트 게임(アダルトゲーム, Adult computer and video games)이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 일본 팔콤의 1983년작 여대생 프라이베트의 모습. 퍼즐 게임인데, 이미지가 참 ‘안습’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처럼 미연시게임과 어덜트게임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어덜트게임이 맹목적으로 성인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으로 게임 장르 자체가 성인 콘텐츠에 집약되어 있는 반면, 미연시게임의 경우 가상의 게임 세상 속에서 연애 감정을 느끼는 감성적인 게임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만약 당신이 맹목적으로 성인 콘텐츠를 보기 위해 미연시를 하는 사람이라면 미연시를 하더라도 ‘어덜트 게임 유저’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이렇게 당시 일본 게임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어덜트 게임들은 PCE(PC엔진)을 중심으로 노골적인 성적 묘사를 담은 채 발매되기 시작했다. 또 이전 게임을 만들지 않았던 새로운 게임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일단 어덜트 게임의 제작은 굉장히 손쉬웠다. 만화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평면적인 정지화상만 만들면 게임의 80%이상을 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금전적인 부분이나 개발력의 수준 등 게임 제작에 그리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주된 플랫폼이 PC였기 때문에 가정용 게임기에 비해 가격, 라이센스, 개발전용기기(게임 개발전용 워크스테이션 등) 등을 개발할 필요가 없이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로 개발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이 적은 회사들도 만들 수 있었던 수준의 게임이었고, 또 그 이상의 반응을 기대할 수 있었다.

△ 챔피언소프트의 4차원소녀 리디아의 모습. 이 정도가 그나마 순화된 이미지였다

사실 당시에 나온 게임들은 지금 보기에는 민망한 수준의 그래픽으로 그려져 있는, 말하자면 미소녀라고 말하기 어려운 수준의 여성 캐릭터의 탈의 신이라든가 성적 묘사 장면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적인 가치는 거의 없었다. PSK의 로리타나 에닉스의 로리타신드롬 등 다양한 취향(?)의 남성들을 겨냥한 게임들의 종류는 많았지만 맹목적인 성인용 콘텐츠를 집약시킨 어덜트 게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1985년, JAST라는 회사에서 등장한 ‘천사들의 오후(天使たちの午後)’라는 게임으로 실질적인 미연시라는 장르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천사들의 오후는 현재 미연시의 전형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 게임 내용의 변화와 어드벤처성을 강조한 최초의 게임이었다. 게임에는 플레이어가 보다, 말하다, 듣다, 이동하다 등의 커맨드 선택 시스템이 도입되었으며, 이로 인해 텍스트가 바뀌며 게임의 전개가 달라지는, 말하자면 분기점들이 게임 이곳저곳에 퍼져있는 어드벤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당시 이런 시스템의 도입은 단연 획기적이었다(당연히 최초였으니 그럴 수밖에). 플레이어에게 게임에 등장하는 히로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을 십분 전해주면서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상에서 히로인의 이야기에 대답을 하는 부분은 현재의 비주얼노벨이라는 장르를 있게 한, ‘미소녀의 그림을 보는 재미’에서 ‘글을 읽는 재미’를 선사하게 되었다.

△ 천사들의 오후. 미연시의 역사에서는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이런 자신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게임상의 화면을 보고 유저들은 점차적으로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게임 상의 주인공에 대한 동질감과 상대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게임을 하면서 유저들은 연애 감정에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가상현실의 플레이어와 여성 캐릭터에 자기 자신만의 ‘인격’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성인적 표현의 수위 등은 당시 다른 게임들 못지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점차적으로 유저들은 천사들의 오후를 플레이하는 목적이 ‘성인용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애 시뮬레이션의 게임의 매력 때문에’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물론, 많은 인기에 번외편까지 나온 이 천사들의 오후가 취하고 있는 게임적 형태가 이후 미소녀 게임 업계 전반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 장르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이 천사들의 오후라는 게임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이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림체 또한 진짜 ‘미소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같은 기반의 게임 플랫폼이라고 인식하기 힘들 정도로 출중한 수준의 그림체의 미소녀들이 등장해 플레이어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렸다. JAST는 유명 미소녀들이 잔뜩 등장하는 유명 애니메이션을 게임화하기도 하면서 미소녀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