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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게임 INSIDE 22화- 야구를 꿈꾸던 소년, 구단주가 되다- 1부

작성자 :	등록일 : 2011-07-18 오전 11:55:51

2009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차가운 바람은 대지를 얼게 만들고 용서 없는 날카로운 온도는 여미는 옷깃을 아랑곳 하지 않고 사람들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는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공기만큼이나 사람들의 표정도 싸늘했다. 많은 이들이 온기를 찾아 실내로 들어가 거리를 황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계속되다 서서히 풀릴 무렵인 3월. 움츠러들었던 생명의 태동이 대지를 적시고 따스한 공기가 세상을 감싸 안기 시작했을 때. 겨우내 답답했던 마음을 털기 위해 나와야 하는 시기에, 많은 이들이 봄볕의 따스함을 느끼러 나오기보다는 실내에서 좀처럼 나올 줄을 몰랐다. TV앞으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그 해 3월 5일부터 24일까지 일본과 미국에서 연이어 펼쳐 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문이었다. 지난 2006년 열린 첫 번째 대회에서 일본과 미국 등 한 수 위라는 야구 강국들을 연파하며 준우승에 올라 젊은 층에게서 소외되고 있던 야구를 다시 한 번 국민스포츠로 격상시키는 계기가 된 대회였기에 많은 이들은 두 번째 대회에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민적인 관심이 걸렸던 제 2회 WBC대회에서 대한민국은 1회 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4강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서 열린 준결승전에서 접전 끝에 아쉽게 일본에게 패해 결승 무대를 밟지는 못했지만, 기라성 같은 메이저리거들이 버티고 있는 강국들을 연파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힘을 주는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런 열광적인 반응 속에서, 한 사내의 눈이 TV를 보며 반짝이고 있었다. 야구라는 그라운드에서 공을 치고 던지는 것을 줄 곳 꿈꿔왔던 소년은 그의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하고, 결심했다.

“한국 프로야구 9번째 구단의 구단주가 되자.”

그가 세상에 첫 울음을 알렸던 1967년은 전국을 강타하기 시작한 고교야구가 범 전국적으로 발돋움을 하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해였다.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각종 고교야구 대회에 박차가 가해진 것은 그 해에 창설된 대통령배쟁탈 전국고교야구대회(중앙일보사 주최)라고 할 수 있었다. 고교야구 전국대회의 효시인 대통령배는 전국의 야구를 하는 꿈나무들의 최고의 대회가 되었고 일본의 하계 전국 야구대회인 고시엔 대회 못지않은 열기를 누렸다(실제로 전국대회 우승팀들은 1970년 고시엔대회 우승팀과 한일 고교대항전을 벌여 3전 3승을 거두기도 했다. 총 전적은 27전 14승 9패 4무).

이후 고교야구는 본격적인 전국대회라고 할 수 있는 1971년 창설된 봉황대기쟁탈 전국고교야구대회(한국일보사 주최)가 창설되면서 국내 야구계의 근간과 뿌리가 되었고, 이후 부산의 화랑대기쟁탈, 대구의 대붕기쟁탈 등 수도권에서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전국 고교야구를 실시하게 되면서 국민스포츠로써의 입지를 다져 나갔다.

본격적으로 국내에 야구라는 스포츠가 봉우리를 터뜨리고 꽃을 피우기 시작할 무렵에 태어난 김택진 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는 그야말로 ‘꿈꾸는 야구소년’이었다. 선천적으로 골방에서 책만 읽는 성격이 아니었다. 비약적으로 인기가 급상승하기 시작한 고교야구에 전국은 매료되어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에게도 그런 영향이 미치지 않을 리 없었다.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나 골목길을 뛰어놀기 시작했을 때부터 청춘이 폭발하는 고교야구가 자연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한 유년기에 가장 많이 한 놀이는 ‘친구들과 함께 공 던지기’였다.

사실 고교야구보다 먼저 김 대표가 유년기 시절 야구라는 ‘꿈’을 꾸게 했던 계기는 ‘거인의 별(巨人の星)’이라는 만화였다. 열혈 스포츠 근성물의 효시라고 볼 수 있는 60년대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거인의 별은 ‘내일의 죠’, ‘사무라이 자이언츠’, ‘타이거 마스크’등 근성 스포츠 만화에 탁월한 필력을 발휘한 원작자 카와하라 잇키(梶原一騎, 거인의 별의 작화는 카와사키 노보루(川崎のぼる)가 담당했다)의 대표작으로, 1968년 TV에서 방영되어 일본 현지 최고 시청률 40%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지금은 거대 장르로 자리 잡은 야구만화의 선조 역할을 한 만화였다. 어린 소년에게 우정과 승리를 향한 갈망, 뜨거운 노력의 결실과 감동이 흐르는 이야기는 분명 가슴 깊이 와 닿는 그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 60년대 일본 코믹스와 애니메이션계를 대표했던 만화인 ‘거인의 별’은 총 182화로 열혈 스포츠 근성물의 효시격인 작품이다. 이후 77년과 79년에 ‘신 거인의 별’, ‘신 거인의 별2’가 제작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끈 작품이다. 국내에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라며 아버지가 아들의 뺨을 때리는 한 장면으로 유명하다. 그 한 컷에서도 익히 볼 수 있었듯이, 만화의 내용은 아버지가 아들을 최고의 야구선수로 만들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통해 야구라는 스포츠를 극적으로 극대화 하는 내용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거인의 별에서 주인공 휴마의 아버지가 아들을 강한 투수로 만들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작은 체구의 주인공이 근력을 키우기 위해 온 몸에 스프링 장치를 하고 운동을 하죠. 그렇게 하면 주인공처럼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웃음). 기구는 제작할 순 없었지만 실제로 모래주머니를 팔과 다리에 차고 학교를 다니기도 했어요. 선구안을 키우기 위해 달리는 기차의 승객을 보는 만화 속 이야기를 따라해 보기도 했습니다.”

극한 훈련 속에서 피어나는 운동선수들 간의 우정과 근성으로 극복하는 극한의 위기, 그리고 강해지고자 하는 사나이들의 승부욕, 긴장감 넘치는 경기 장면은 어린 시절의 김 대표에게 뜨겁게 다가왔다. ‘저 사내들처럼 공을 던지고 싶다’라는 열망은 어린 소년의 가슴을 강하게 충동질했다.

그런 그에게 작은 체구는 핸디캡이었다. 동네 야구를 하면서 거인의 별의 주인공인 효마와 마찬가지로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되고 싶었던 그의 포지션은 당연히 투수였다. 하지만 자신의 구속은 언제나 불만이었다.

하지만 낙담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어린 소년은 직구가 안 된다면 변화구를 던지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꽃과 같은 강속구도 그의 로망이었지만, 타자를 크게 헛돌게 하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변화하는 변화구는 그에게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변화구는 ‘커브’였다.

높은 타점에서 폭포수와 같이 떨어져 내리는 커브를 던지고 싶었던 소년 김택진은 교과서보다 야구책을 보며 커브를 던지는 법을 익혔다. 다행히 동네 책방에서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는 책을 찾을 수 있었다. 밤새 자신이 그리고 있던 커브볼을 던지기 위해 골목에서 담벼락을 벗 삼아 어두워질 때 까지 연습했다. 거인의 별을 보며 꿈을 꾸기 시작한 소년의 열정이 담벼락에 새록새록 새겨졌다.

유년기를 거쳐 초등학교를 보낸 소년 김택진의 중학교는 서울 동국중학교였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그의 야구에 대한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담벼락을 상대로 커브를 잘 던지려고 그렇게 씨름을 해서인지, 중학교 즈음해서는 정말로 커브를 잘 던지게 됐어요. 야구의 인기가 나날이 가면 갈수록 높아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친구들과 야구를 하는 날이 줄어들진 않았죠. 그래서 친구들에게 대접을 받았어요. 커브를 던질 줄 안다는 ‘동네 야구 투수’는 흔치 않았으니까요. 심지어 변화구라는 게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았죠. 빠른 볼은 없었지만, 커브로 동네 야구에서 꽤 날렸습니다.”

그의 말처럼 동네야구를 하면서 커브를 던지는 투수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학교와 집 인근 장충단 공원에서 주로 야구를 했던 김 대표는 신기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는 희소가치(?) 덕분에 단숨에 팀의 주축 투수로 올라섰다. 사실 친구들끼리 공놀이를 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거창하게 팀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커브를 구사해 타자를 속이며 짜릿함을 추억은 9구단 구단주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커브를 던지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며 마치 야구로 진로를 바꾸는 학생들과 같은 시간을 보낸 소년 김택진은 그러나 중학교 시절에 야구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업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개인의 생각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진학을 위해 학업에 정진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냥 호연지기를 기르며 야구에 몰두할 시기가 아니기도 했던 것이다.

“체구가 컸다면 야구선수가 되었을지도 몰랐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그 때 야구에 대한 생각과 열망은 굉장히 뜨거웠죠.”

야구에 그만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소년 김택진이었지만 학업에 신경을 쏟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야구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은 야구라는 스포츠의 열정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던 소년의 가슴에 다시 한 번 불을 당겼다. 사진은 1982년 당시 개막전에서 선수대표로 나선 OB 베어스 윤동균을 대표로 개막전 선서를 외치고 있는 모습(출처=한국프로야구협회).

그랬던 그를 다시 야구로 눈길을 돌리게 했던 것은 1982년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의 뜨거운 열기였다. 실업야구로 운영되고 있던 한국 야구의 명백은 고교야구와 실업야구에 이어 프로야구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학업에 열중하던 그도 한국프로야구의 출범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그 개막전을 TV로 지켜보게 됐다. 아직은 이름만 ‘프로’라고 바뀌었을 뿐이었지만 실업야구와 다른 멋들어진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수놓는 것을 보고 소년은 다시 한 번 야구에 대한 열정을 느꼈다. 앞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될, 서울 연고의 MBC청룡과 대구 연고의 국가대표 군단 삼성 라이온스가 펼치는 개막전을 보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프로 원년 개막전은 이런 소년의 가슴에 그야말로 불을 지피고 기름을 붓는 뜨거움을 다시 한 번 선사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의 춘삼월이었지만 3월 27일 토요일의 서울운동장을 빼곡하게 메운 2만3천9백98명의 대관중은 그런 날씨를 아랑곳 하지 않게 뜨겁게 달궜다. 한국프로야구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카드인 만큼 경기는 접전이었다. 삼성이 5-0으로 앞서나가며 경기를 쉽게 풀어나가는 듯 했지만 MBC는 5회 말 유승안의 중전적시타, 6회말 백인천의 좌중월솔로홈런으로 7-4까지 야금야금 따라붙었다. 7회 말에는 유승안이 2사 1,3루에서 초구를 노려 우월3점 홈런을 뽑음으로써 7-7 동점으로 게임은 백중세로 접어들었다.

삼성은 황규봉에 이어 이선희가 등판했다. 승부는 MBC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8회 2사 만루의 찬스를 맞이했기 때문. 그러나 MBC가 9회 2사 만루의 연달은 찬스까지 놓치면서 게임은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개막전이 야간 조명까지 키고 실시하는 심야 연장전으로 접어 든 것이다.

그렇게 찾아 온 프로야구 첫 경기의 최초의 연장전. 운명의 10회 말에 온갖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소년 김택진의 입에서 안타까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10회 1사 2, 3루의 찬스를 맞이했지만 유승안의 스퀴즈 실패로 2사 1, 3루가 된 것. 다음 타자는 한국프로야구 유일무이의 4할을 기록한 타자 백인천. 이선희는 백인천을 고의사구로 거르고 다음 타자 이종도를 선택했다. 다시 찾아 온 2사 만루의 찬스.

초구 볼, 2구째도 볼이 들어오자 TV를 보는 소년은 밀어내기 볼넷을 염원했다. 3번째 연달아 찾아 온 2사 만루의 찬스였기 때문에 허무하게 찬스가 무산되기보다 한 점만을 내기를 간절히 염원했던 것. 그리고 3구째,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하는 이선희의 몸 쪽 공에 꿈쩍도 하지 않던 이종도의 방망이가 반응했다.

“딱!”

번개같이 돌아간 이종도의 방망이에 걸린 공은 좌익수 키를 훌쩍 넘겨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연결됐다. 그리고 그 만루홈런으로 연결된 하얀 공은 담장뿐만이 아니라 TV로 그 장면을 생생히 지켜보고 있던 소년의 가슴 속으로 날아 들어왔다.

- 2부에서 계속……

※게임 INSIDE- 야구를 꿈꾸던 소년, 구단주가 되다 편은 전 세계 게임업체 사장 최초로 신생 프로야구단의 구단주가 된 김택진 현 엔씨소프트 대표의 공식 석상에서의 구술과 인터뷰 등을 토대로 작성된 것입니다. - 편집자 주

겜툰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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